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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n School Frankfurt am Main Deutschland
도서반
작성자 Sdirektor        
작성일 2012/01/20 22:47
분 류 교사
ㆍ추천: 0  ㆍ조회: 1472    
ㆍIP: 91.xxx.221
행복한 문학편지 - 이장욱, 「변희봉」 중에서

이장욱, 「변희봉」 중에서

   배니……봉이요?
아니, 밴히봉. 밴소 할 때 밴. 히망 할 때 히.
막내는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변희봉이요?
그래, 밴히봉. 지하철 계단을 내리가고 있는데, 그 분이 나를 스치간 기라.
막내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시장통에서는 생선좌판을 벌이고 있는 것도 봤다 아이가.
네에.
만기는 기를 쓰고 붙임방지 요철 위에 포스터를 붙이고 있었다. 그때 거의 건성인 목소리로 막내가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누군데요?
만기는 막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간신히 붙여놓은 포스터가 툭, 하고 떨어졌다.
 


- 이장욱, 「변희봉」 중에서(『고백의 제왕』)  
만기는 극단 막내와 함께 연극 홍보 포스터를 붙이러 다녔다. 포스터는 잘 붙지 않았다. 전봇대에는 붙임방지 요철이 설치돼 있었다. 만기는 요철을 매만지면서 막내에게 말했다. 키가 훤칠한 이십대 중반에 생김새가 좋은 녀석이었다. 만기와는 종자가 달랐다.
내가, 밴히봉 선생을 봤다 아이가.
네? 누구요?
밴히봉 선생 말이다.
 






   
 고백의 제왕  2010년 3분기 우수문학도서 [소설]  
이장욱
2010년 4월 5일 발행
그는 ‘전방위’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시 소설 평론 어느 하나에 평생 매진해도 주목받기 쉽지 않은 판에, 그가 쓰면 시든…
 독서감상문 3편  

 
   
 
     
   
 혹시 변희봉을 아시나요?

이 세상에서 조금 어긋나 있다고 느끼는 당신에게




배우 변희봉을 좋아하시는지요?



저는 좋아합니다. 어딘지 기이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그의 표정과 말투를 좋아합니다.



단편 「변희봉」은 아무도 배우 변희봉을 모르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만기라는 사내의 이야기입니다. 만기는 실직과 이혼과 부친의 임종을 한꺼번에 겪게 됩니다. 삶의 벼랑에서 만기는 배우를 하겠다며 연극판에 뛰어듭니다. 문제는 그에게 배우의 재능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는 데 있지만 말입니다. 그의 우상이 바로 배우 변희봉입니다. 그런데 만기는 기이하게도 변희봉이라는 이름 하나가 이 세상에서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신에게는 너무도 명백한 무엇인가가 검은 구멍처럼 텅 비어 있을 때, 당신은 이 세계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요? 당신이 알고 있던 무엇인가가 정말 존재했었는지 의심스러워질 때, 당신은 어떤 동요를 겪게 될까요? 설령 그것이 작고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어긋남은 우리가 이 세계의 운행에 몸담는 것을 치명적으로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요?



당신과 마찬가지로, 저도 이 세상에 대해 저 자신이 조금 어긋나 있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갓 눈 뜬 아침이기도 하고, 모두가 잠 든 깊은 밤이기도 하며, 때로는 누군가와 아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이기도 합니다. 갑자기 낯선 이질감이 나와 세상 사이에 끼어들어 있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겨우 5분의 시간이나 5센티미터의 거리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5분과 5센티미터 때문에 우리와 이 세계 사이에 타협이 불가능한 단절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런 때가 오면, 당신은 당신이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광화문이나 종로거리를 걷다가 당신은 저나 또 다른 만기들을 우연히 만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때가 오면 서로 어깨를 툭 치며 이렇게 인사를 건네기로 합시다. 서로에 대한 아주 작고 사소한 이해와 긍정의 마음을 담아서 말입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변희봉을 아시나요?”




이장욱 올림
 
   
 
이장욱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1994년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 『정오의 희망곡』, 평론집 『혁명과 모더니즘』,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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